하승수의 <나도 당원이 되고 싶다>에 답하다
변호사라는 직업보다 시민운동가로 더 잘 알려진 하승수 운영위원(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이 드디어 커밍아웃을 했군요.^^ 자신의 색깔은 ‘녹색’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그는 누구보다 정치변화에 대한 욕구가 강했고, 소박했지만 풀뿌리에서부터 좋은 정치의 싹을 틔우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서구의 녹색당이 풀뿌리를 기반으로 녹색정치를 실현시켰다면, 누구보다 지역에 대한 애정을 지닌 하승수 운영위원의 커밍아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 하승수의 <나는 당원이 되고 싶다> 글 : http://qr.net/em6x
- 프레시안 인터뷰 : http://qr.net/em6y
권력의 문제와 관련해서 저에게 정치적 영감을 주었던 경험은 브라질 포르뚜알레그리에서였습니다. 주민참여예산 조사를 위해 브라질 포르뚜알레그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여러 사람을 만났었는데, 우비라탄 드 소우짜(Ubiratan De Souza)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전(前)시장의 비서이기도 했고, 참여예산을 처음 도입한 정당인 ‘PT(노동자당, Partido dos Trabalhadores)'의 코디네이터이기도 한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PT는 권력을 잡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좀 우매한 질문이었지만, 선거를 통해서 집권정당이 되고 싶은 이유가 알고 싶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권력을 시민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기 위함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철학의 일환이 주민참여예산인 것입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매년 경제성장 7%를 올리겠다’,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뉴타운 10개를 건설하겠다’, ‘내가 시장이 되면 복지예산을 2배로 올리겠다’. 모든 공약이 내가 권력을 잡으면 시민들에게 무엇을 해주겠다는 화법입니다. 권력을 쪼개고 없애겠다고 약속하는 정치집단은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원래 정치의 주인인 시민에게 권력을 다시 되돌려 줄 자세가 되어 있는 정치세력을 간절히 바랍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에만 충실해도, 시민에게 권력을 되돌려 준다는 것은 절대로 과장되거나 실현 불가능한 이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도 세계 여러 도시가 실현하고 있는 철학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꽃은 참여에 있다고 믿는 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생활의 문제가 정치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토론되고 협의되는 ‘참여의 정치’를 꿈꿉니다. 몇몇 인지도 높은 인물 중심의 정치보다는 평범한 생활인이 주인이 되는 그런 정치를 늘 희망하고 있습니다. 거대 담론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겠지만 생활의 문제들이 더 많이 다루어지는 그런 정치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인의 욕구를 담아낼 수 있는 정치세력, 혹은 정당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요?
지역에서 일하다보면, 정당인들과 자주 만날 때가 있습니다. 몇몇 진보정당의 당원들은 지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모두 좋은 사람들이고 지향하는 바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역에 일이 생기면 함께 뜻을 맞춰 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당인들은 선거가 다가오면 지역사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경험은 기억하지 못하고, 중앙정치의 흐름이나 정당의 논리를 앞세우는 경향이 매우 강해집니다. “정당이기 때문에 권력지향적일 수밖에 없다”거나 “당선을 위한 전략”이라는 정당의 속성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분명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당 밖의 정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예컨대 선거 시기에만 폭발적인 에너지를 집중하려는 정당정치와 일상의 정치행위를 통해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것의 차이. 저는 정당 밖의 일상정치가 실질적인 정치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녹색당 창당포스터(출처:http://qr.net/el2l)
내 딸아이가 안전하게 커가는 것이 저에겐 가장 큰 정치적 화두입니다. 저에겐 아토피가 정치고, 먹거리가 정치고, 에너지가 정치입니다. 이런 일상의 문제로부터 정치이야기가 풀어졌으면 합니다. 생활의 문제 속엔 한국사회의 다양한 모순이 숨어 있습니다. ‘작은 문제에 큰 문제가 있다’는 명제는 정치를 바라보는 저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소수의 엘리트나 기득권자 정치독점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인에게 더 가까운 정치, 생활인이 주인인 정치를 해보고 싶습니다.
성장보다는 분배를 외치고, 핵에너지보다는 생태에너지를 외치고, 개발보다는 복지와 환경을 당당히 외치는 그런 정치세력의 작은 촛불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꿈꿔왔습니다. 내 생각을 대신할 정당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하승수 운영위원의 커밍아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에겐 누구와 함께 정치를 하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장기표 선생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그가 주창한 ‘녹색사회민주당’의 가치나 정치 지향은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를 신뢰할 어떠한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족적은 운동의 후배인 저의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승수가 내미는 손은 흔쾌히 잡고 싶습니다. 어차피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의 커밍아웃을 반기며, 저도 기꺼이 커밍아웃을 합니다..^^
